그때도, 지금도, 언제나 삿포로의 중심에서.

삿포로 시계탑

TEXT/DAIKI ITOH, PHOTO/NAOKO TAKAHASHI

와인빛이 감도는 붉은 지붕, 유백색의 목조 벽면, 그리고 사면에 자리한 시계탑을 자랑스럽게 내건 목조 건물 — 삿포로의 상징인 “시계탑”. 정식 명칭은 “옛 삿포로농학교 연무장”입니다. 애칭인 “시계탑”으로 불리며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 기원은 약 135년 전, 홋카이도대학의 전신인 삿포로농학교의 “연무장”으로 처음 지어졌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삿포로농학교 초대 교감이었던 윌리엄 S. 클라크 박사는, 훗날 홋카이도 개척을 이끌어갈 인재를 교육하고 훈련시키겠다는 목표로 "무예 연습장"을 구상했습니다. 그의 후임 교감인 윌리엄 휠러가 기본 계획을 수립했고, 건물은 메이지 11년(1878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원래는 종을 매달기 위한 작은 종탑만 있었을 뿐, 시계 기능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개척사 장관이었던 구로다 기요타카가, 홋카이도 개척의 중요한 거점이 될 건물치고는 지나치게 소박하다고 여겨, 시계탑을 추가하라고 강력히 지시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계탑은 "삿포로구의 표준 시계"로서 도시의 리듬을 관장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이 손목시계를 소유하는 것이 아직 흔치 않던 시절, 사람들은 시계탑을 올려다보고 그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시간이라는 개념을 일상 속에 받아들였습니다. 종소리는 반경 약 1리(약 4km)까지 울려 퍼졌다고 전해지며, 주민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었습니다.
메이지 36년(1903년), 삿포로농학교는 지금의 홋카이도대학 부지로 이전했습니다. 하지만 시계탑(연무장)만은 그 자리에 남아 삿포로구가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공회당과 도서관으로 역할이 바뀌며 주민들에게 개방되었고, 한층 더 친숙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계탑은 삿포로 시민들에게 사랑받으며, 어느새 삿포로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시계탑은, 사실 주변을 둘러싼 빽빽한 건물들 사이에 다소 옹색하게 자리 잡고 있어 "실망스러운 명소"라며 놀림을 받기도 합니다. 한때는 널리 울려 퍼지던 종소리도, 지금은 도시의 소음과 고층 건물의 숲에 파묻혀 탑 바로 근처에서만 겨우 들릴 정도입니다. 홋카이도다운 언덕이나 공원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논쟁이 여러 차례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계탑의 진정한 의미 — 삿포로, 그리고 홋카이도 자체의 역사를 지켜본 살아있는 증인이라는 점 — 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계속 남아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로 대표되는 시계탑은, 홋카이도 개척의 상징으로 서 있습니다. 홋카이도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개척자들의 각오를 이어받아,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자리에 굳건히 서서 삿포로의 상징이자 시민 정체성의 표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
옛 삿포로농학교 연무장, 시계탑

삿포로시 주오구 기타1조 니시2초메
TEL.011-231-0838
입장료/성인 200엔
※중학생 이하 무료
영업시간/8:45~17:10
※최종 입장 17:00
정기휴무/매월 넷째 주 월요일
※넷째 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 날
연말연시(12월 29일~1월 3일)
sapporoshi-tokeidai.jp